코로나 이후의 조종사생활
- 캡틴닭 비행LOG
- 2021. 8. 3. 23:45
변화
COVID-19 소식을 처음 접한 건 2019년 12월이었다. 처음에는 변이된 독감 정도로 생각했지만 2020년 초가 되자 영화 '감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심각한 소식과 동영상들이 인터넷에 퍼지기 시작했다. 우한에서 시작된 이 바이러스는 급격한 속도로 전 세계로 퍼지었으며 민간항공업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2월이 되자 우리가 운항하는 여러 나라에서 폐쇄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필리핀 세부 비행에 있었는데 이번 비행 이후로 당분간 세부노선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3월 초에는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도시가 폐쇄되었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몽골도 폐쇄가 되었다. 이후 급속도로 항공편이 취소되고 폐쇄되었으며 여행업과 항공업은 직격탄을 맞아 크게 휘청거렸다. 직원들은 많은데 노선이 사라져 버렸으니 투입될 인력은 넘치나 투입될 곳이 없었다. 회사에서는 유급휴직과 무급휴직을 병행하여 최대한 버티는 처지이었지만 많은 회사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솔직히 지금도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궁금한 회사들이 많다. 화물수송이 증가하고 수임료가 올라 어느 정도 적자를 메꿔준다고 하지만 활황기에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코로나 이전에도 출근일이 엄청 많은 건 아니었지만 이후로는 동네 주민들이 백수로 오해할 만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가끔 마주치는 옆집 아이들이 나를 보고 "저 아저씨는 직업이 없나 봐"라며 엄마에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입도 줄고 대출금과 일상 생활비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생활이 어려진 조종사가 많아졌다. 회사에는 겸업금지조항이란 게 있다. 겸업금지는 노동법으로 강제하지는 못하지만 자체적인 규정으로 정해져 있으므로 부수입을 내는 활동이 회사에 알려지는 건 굉장히 꺼려지는 일이다. 어떤 식의 불이익이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아예 직장이 사라져 버린 조종사들도 있고 입사가 취소되거나 훈련 중에 훈련이 중단되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한 조종사들도 있었다. 그래도 줄어든 수익과 함께 남는 시간을 낭비하는 건 분명 괴로운 일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다른 수입원을 찾는 사람들도 생겼다. 쿠팡 배달을 하다 쓰러졌다는 조종사 소식을 들은 것도 이때쯤이다.
자기개발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조종사들이 많아졌다. 위기업종으로 분류돼 국가에서 지원하는 내일배움카드 사용이 가능했다. 한 번쯤 관심 가지고 있던 기술을 배운다거나 활용하기 좋은 교육과정들을 들었다. 요리, 제과제빵, 바리스타 과정을 들으며 취미 또는 창업을 생각하는 사람들, 영상 관련 교육을 듣고 유튜버를 꿈꾸는 사람들, 지게차나 굴착기 자격증을 따는 사람들 등 각자 생각하던 다양한 교육을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해 수강했다.
운송용 자격을 따거나 영어 공부를 하는 등 향후 비행 생활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남는 시간을 가족과 함께하려고 더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도하게 많아진 시간을 자기개발을 위해 투자하는 건 분명 바람직한 일이라 본다.
휴직 기간이 많이 생기긴 했지만 아직 비행은 계속하고 있다. 기존의 비행 대부분이 승객수송이었다면 지금은 화물수송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다. 벨리카고(Belly Cargo) 비행도 꽤 나오고 해외 체류가 힘들어져 2SET QUICK TURN (투셋퀵턴)비행이 많아졌다. 투셋퀵턴은 평소 2명이서 비행하던 구간을 4명의 조종사가 시간을 나누어 교대하며 비행하는 것을 말한다. 2명이 조종해서 현지에서 자고 오던 것을 4명이 타서 공항에서 승객 또는 화물만 내리고 바로 돌아온다. 한번 출근하면 12~18시간을 잠도 못 자며 일하기에 피로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비행이 주로 밤에 이루어져서 한번 다녀오면 이틀 정도는 시차가 바뀐 채로 정상적인 패턴 유지가 힘들어진다.
가끔 있는 레이오버도 해외 코로나 상황에 따라 대부분은 호텔에서 나가지 않는다. 인도나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면서 호텔 밖으로 나가는 조종사는 아마 없지 않을까? 몇몇 나라는 아예 승무원이 외출을 못하게 막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 많은 면에서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조종사에게 이런 고용불안의 시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항공산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라는 점이다. 주식이 떨어지면 누군가에게는 저점매수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항공산업의 위기는 이곳에 새롭게 발을 들이고 싶은 누군가에게는 또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코로나는 언젠가는 종식된다.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수준이 되면 항공업은 다시 정상화될 것이다. 그날이 오면 준비된 자들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며 오늘 포스팅을 마친다.
'캡틴닭 비행LO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륙과 착륙시 비행기 창문덮개를 올려야 하는 이유 (2) | 2021.08.06 |
---|---|
코로나 백신 접종하고 비행하기 (5) | 2021.08.04 |
조종사와 코로나19 백신접종 (0) | 2021.08.03 |
항공법 (0) | 2021.08.02 |
ICAO ANNEX의 구성 (0) | 2021.08.02 |
이 글을 공유하기